에디터파닭 제52회 한능검 심화
기출문제 해설(1~10번)
안녕하세요. 드디어 본업으로 돌아와 한능검 기출문제 해설 포스팅을 시작하는 에디터파닭이에요.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집에 오면 씻지도 못하고 뻗느라고 블로그에 신경을 못 썼네요.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집중해서인지 집에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주식 창만 바라보네요...??
잡담은 그만! 한능검 해설 바로 시작할게요!
1번 - 청동기 시대 생활 모습
정답 선지: 5. 의례 도구로 청동 거울과 청동 방울 등을 제작하였다.
=> 한능검 시험에서는 언제나 1번 문제에서 선사 시대의 특징을 보고 각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인 부여 송국리와 청동기 시대 유물인 민무늬 토기, 비파형 동검을 보고 청동기 시대에 대한 해설을 찾는 문제입니다.
2번 - 위만 조선
정답 선지: 2. 진번과 임둔을 복속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
=> 진한 교체기에 오랑캐의 복장을 입은 채 무리를 이끌고 준왕에게 항복하였다가 준왕의 신임을 얻은 뒤, 오히려 준왕을 몰아내 왕위에 오른 위만입니다.
위만은 철기를 본격 수용하며 우세해진 무력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을 전개하여 진번과 임둔을 복속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3번 - 신라 진흥왕
정답 선지: 3. 마운령, 황초령 등에 순수비를 세웠다.
=> 거칠부에게 역사서 <국사>를 편찬하였다는 내용이 가장 큰 힌트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삼국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서 역사서를 편찬한 삼국의 왕이 누구인지를 자주 묻는데요,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하였고, 고구려는 7세기 영양왕 때 이문진으로 하여금 <유기> 100권을 <신집> 5권으로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의 정답인 6세기 신라 진흥왕은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죠. 빈출 주제이니 꼭 기억해 주세요!
진흥왕은 함경도 원산만 일대로 진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황초령 순수비와 마운령 순수비를 건립한 왕이기도 합니다.
4번 - 옥저의 골장제와 삼한의 천군과 소도
정답 선지: 3. (나) -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
=> (가)는 옥저의 가족 공동 무덤인 골장제, (나)는 삼한의 제사장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 삼한은 제정 분리 사회로 군장인 신지, 읍차가 있었죠.
5번 - 가야의 특징
정답 선지: 5.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다.
-> 김해 대성동은 금관가야, 고령 지산동은 대가야의 고분군입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구분하여 묻지 않고 '가야'로 통합하여 묻는 문제였네요.
정답은 5번,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한 나라는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덩이쇠를 화폐처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하죠. 문제 난도가 높을 때는 금관가야와 대가야를 구분하여 물을 텐데, 이번에는 쉽게 출제되었네요.
6번 - 고구려의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정답 선지: 2.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뒷면에 '연가 7년 기미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불상의 옷자락 표현 등 조각 수법에서 북조의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1번 고려 말~조선 초의 금동 관음보살 좌상, 4번 통일 신라의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 좌상이 생소하였고 5번 삼국 시대의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은 늘 출제되는 불상과 약간 다른 모습의 불상이었습니다. 다섯 개 보기 중 세 개가 생소하였지만 정답을 찾는 데는 무리가 없는 문제였습니다.
7번 -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고구려 멸망)
정답 선지: 4.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의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가)는 642년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과 여러 대신을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한 뒤 스스로 막리지 자리에 오르는 모습입니다. (나)는 고구려 멸망 직전 연개소문이 죽고 내분이 발생한 모습입니다.
고구려 멸망이 668년이고 백제 부흥 운동은 백제가 멸망한 660년 이후에 발생하였으므로 정답은 4번,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여 백제 부흥 운동을 펼친다는 내용의 선지입니다.
연도 암기가 필수는 아니지만 주요 사건의 발생 연도를 암기하면 정답 찾기가 수월합니다.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서 연도를 암기하면 좋은 사건은 고구려의 살수 대첩(612), 연개소문의 정변/백제 의자왕의 신라 대야성 함락/김춘추가 고구려에 도움 요청(642), 백제의 멸망과 웅진 도독부 설치(660), 고구려 멸망과 안동 도호부 설치(668)를 꼽을 수 있습니다.
8번 - 최치원
정답 선지: 2.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
=> 통일 신라 진성 여왕 때 활동한 6두품 출신 유학자 최치원을 묻는 문제입니다.
통일 신라의 유학자 중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인물은 <화랑세기>와 <고승전>을 편찬한 진골 출신 김대문, <답설인귀서>와 <청방인문표>를 지은 6두품 출신 강수, 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에 공헌하였으며 <화왕계>를 지어 신문왕에게 올린 6두품 출신 설총, 그리고 이번에 출제된 최치원입니다.
제시된 '격황소서'는 <토황소격문>이라고도 불립니다. 꼭 기억해 주세요!
9번 - 발해의 특징
정답 선지: 2. 주자감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 대무예는 발해 무왕의 이름입니다.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면 발해 각 왕의 업적을 구분하여 물을 텐데, 이번에는 그 대신 '발해'라는 나라의 특징을 통합하여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정답은 2번,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문왕 때 설치되었습니다.
10번 - 후고구려 궁예
정답 선지: 3.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서를 설치하였다.
=> 후고구려의 궁예를 묻는 문제입니다. 신라 왕족의 후예인 궁예는 반신라 감정을 가져 신라 왕의 화상을 칼로 베었다고도 하며, 미륵불을 자처하였다고 하죠. 광평성은 궁예가 설치한 후고구려의 최고 중앙 기구입니다.
궁예를 묻는 문제가 또 출제될 경우, 그가 북원 지역 양길 휘하에서 장수로 활동하며 세력을 키웠다는 것과 송악(개성)을 도읍으로 삼아 후고구려를 건국하였고, 이어 철원으로 천도한 사실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한 가지 더! 국호를 후고구려에서 마진으로,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꾸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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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전과 선택이든 이 블로그를 찾아 주신 모든 분께 노력만큼의 행운이 함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험 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