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파닭 제53회 한능검 심화
기출문제 해설(11~20번)

안녕하세요. 수험서 편집자 에디터파닭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는 고려 시대 파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파닭이와 함께 열공한다면 시험장에서 어떤 문제라도 쉽게 척척 풀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함께 가볼까요~!
11번 - 고려의 어사대
정답 선지: 5. 소속 관원이 낭사와 함께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 시정 논박, 풍속 교정, 규찰 및 탄핵 업무를 담당한 기구는 고려의 중앙 정치 조직인 어사대입니다.
정답은 5번,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는 대성(대간)이라 하여 서경권을 행사하였는데요. 서경권이란 모든 관리의 임명 동의권을 말합니다. 대성(대간)은 또한 국왕의 과오와 비행을 비판하는 권한인 간쟁, 잘못된 왕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봉박을 행사할 수 있었죠.
12번 - 고려 공민왕 때 정민변정도감 운영
정답 선지: 2.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운영하였다.
=> 원의 노국 대장 공주와 혼인하였으며 기철과 같은 친원 세력을 제거하고 원의 내정 간섭 기구인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한 왕은 고려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신돈을 판사(장관)로 등용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운영하여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백성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양인으로 해방시켰습니다.
13번 - 고려 정종 때 거란 침입 대비 광군 조직
정답 선지: 1. 광군을 조직하여 침입에 대비하였다.
=>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고려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왕위에 올린 뒤,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 태후와 부적절한 관계이던 김치양을 살해한 사건. 즉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고려를 쳐들어온 국가는 거란입니다.
강조의 정변은 거란의 제2차 고려 침입의 배경이 되었고, 당시 고려의 수도인 개경이 함락되고 고려 현종이 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양규가 선전하였죠.
따라서 (가) 국가는 거란이며, 거란에 대한 고려의 대응책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 정종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였고, 광군 관리 기관인 광군사를 설치하였습니다.
14번 - 고려의 벽란도
정답 선지: 1.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 첫 번째 사료의 팔관회는 고려 태조 왕건이 숭불 정책의 하나로 개최한 행사입니다. 두 번째 사료의 대식국은 고려 시대에 이슬람(아라비아) 상인을 이르는 말이었죠. 따라서 고려의 경제 모습으로 옳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15번 - 고려 무신 집권기(정중부 집권기) 때 망이 망소이의 난
정답 선지: 4. (라) 무신 정변(1170)~몽골의 침입(1231)
=> 하층민인 망이와 망소이가 공주 명학소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고려 무신 집권기 중 정중부 집권기인 1176년의 사실입니다.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명학소는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인 '소'이며, 이는 망이 망소이의 난이 지역 차별 문제를 포함하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정답은 4번, 무신 정변 이후 무신 집권기가 시작되었고, 몽골의 침입 이후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졌으므로 망이 망소이의 난은 (라) 시기에 해당합니다.
16번 - 대각국사 의천과 교장도감 설치
정답 선지: 5.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 주석서를 편찬하였다.
=>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서 국청사를 창건하고 해동 천태종을 창시한 인물은 대각 국사 의천입니다. 의천은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 주석서인 "교장" 4,700여 권을 편찬하였습니다.
한능검 빈출 주제인 의천의 시험 포인트를 더 짚고 갈게요. 의천은 고려 숙종에게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건의하였으며, 교종 입장에서 선종 통합을 시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수행 방법으로는 교관겸수, 그리고 내외겸전을 강조하였습니다.
17번 -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
정답 선지: 3.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
=> 문화재 이름을 외울 때 가장 앞에 지역명을 꼭 붙여서 외워야 하는 이유! 지역명을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답을 1초컷으로 찾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원의 영향을 받아 다각다층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은 고려 후기에 제작된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입니다.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조선 세조 때 숭불 정책 시행에 따라 건립된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8번 -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 문화사 구분
정답 선지: 1.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설계한 거중기
=> 조선 전기와 후기의 문화를 구분하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사실이 아닌 것은 1번, 조선 정조 때 정약용은 서양 과학 기술 서적인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습니다. 이 거중기는 정조가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데 사용되었답니다. 정약용은 배다리를 설계하기도 하였죠. 같이 기억해 주세요.
19번 - 조선 세조 때 시행된 직전법 특징 찾기
정답 선지: 3.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 조선 세조가 세습되는 수신전, 휼양전의 폐해를 없애기 위하여 과전을 없애고 만든 제도는 직전법입니다.
1391년 시행된 과전법에 따르면 전현직 관리에게 지급된 토지는 관리가 죽거나 반역을 하면 반환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가 사망할 경우 부인에게 지급된 수신전, 관리인 부와 모가 모두 죽은 경우 어린 자녀에게 지급된 휼양전이 계속하여 세습되자, 새로운 현직 관리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조선 세조는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 수조권을 지급하고 수신전과 휼양전을 폐지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였습니다.
20번 -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 운동
정답 선지: 1. 수양 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정리한다.
=> 영월에 유배된 노산군은 조선 단종이며, 성삼문 등의 사육신은 조선 세조 즉위 이후인 1456년에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대화의 배경에는 훗날 세조로 즉위하는 수양 대군이 1453년 김종서, 황보인, 안평 대군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이 있었습니다. 수양 대군은 계유정난 이후 단종에게 양위를 받는 형태로 즉위하였죠.